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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이게 맞나요… 제가 좀 전에 당나라에 대해서 조사를 했거든요…? 근데 워낙 정신없이(?)
제가 좀 전에 당나라에 대해서 조사를 했거든요…? 근데 워낙 정신없이(?) 여러 곳에서 조사를 해서 이게 맞는 내용인지 모르겠어요ㅠㅠ 전문가분들… 한 번만 봐주시면 안될까요…?1. 시대적 배경당나라는 7세기 초, 수나라가 멸망한 후 건국됨. 이 시기 동아시아에서는 신라,백제, 고구려,일본 등이 있었고, 당나라는 이들과 이교 관계를 맺으며 교류함.특히, 신라와는 당-신라 연합을 맺어 백제를 멸망시키는 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함.이때 한반도에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고, 일본에서는 당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나라의 체제를 정비하는 움직임이 있었다.2. 당나라와 다른 나라의 교류를 이끈 인물들 ->당나라의 창업과 교류의 시작점당나라를 세운 건국자. 수나라 말 618년에 당나라를 세움. 서역과의 교류를 장려하지는 않았지만, 당나라의 틀을 세우고 수도 장안을 정비해 훗날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장안이 실크로드의 중심지가 되고, 이후 다양한 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배경이 됨.->교류의 시작점이 되는 체제 정비자.당나라 후기에 활동한 소그드계(중앙아시아)의 혼혈 장군이자 절도사(군인+행정 책임자)였음.큰 반란인 '안-사의 난'을 일으켜 당나라를 크게 흔듦. 당나라 군대와 지방은 서역 출신 이민족 인물들이 많이 있었는데,안녹산이 그 대표임. 이는 당나라가 얼마나 다민족-다문화 교류가 활발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함. 하지만 교류가 많아지면서 문화 충돌과 권력 다툼도 생겼고, 이것이 내부 갈등(안-사의 난)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음.->다문화 교류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사례/교류가 발전만 있는 게 아니라 내부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역사적 교훈.3. 당나라의 국제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과 유적당나라의 수도로, 인구가 백만에 달할 정도로 큰 도시였음. 실크로드의 끝 지점으로, 다양한 나라의 상인과 사신, 종교인들이 모여 사는 국제 도시였음.당나라 황제가 주로 머물던 궁전으로, 장안 북동쪽에 위치해 있었음.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고 정치와 의례가 이루어지는 국가의 중심 공간이었음.4. 당나라의 교류가 가져온 변화와 영향당나라는 다양한 나라들과의 교류를 통해 종교, 문화, 기술 등이 발전함. 불교가 융성하고, 외래 문물이 유입되어 예술과 학문이 발전함. 또한, 주변 나라들은 당나라의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발전에 활용함.
일단 찾는 "전문가분들" 은 지식in 같은 비전문적인 데 들락날락할 이유도 여유도 없어야 맞음. 까마귀 천지인 곳에 백로가 올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
그리고 ai 돌린 게 아닌가 의심되는데,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 내용대로라면 크게 문제될 만한 건 없지만 이연하고 안녹산 맨 마지막 줄 둘은 고치는 게 좋겠음. 당이 국제적으로 교류가 활발했다고 배우기는 할 테지만 당 고조 때부터 그랬는지는 검토할 필요가 있고, 안녹산은 소그드계인 건 맞지만 그쪽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임. 즉 다민족 사회라면 모를까 다문화 교류라고 하기는 다소 부적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