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손무장군께서도 '안 싸우고 이기는 것이 지혜롭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세가들은 끝장을 보려고 온 백성 다 동원하고(건강이 안 좋아서 용사로 부적합한 사람들도 부르고) 돈도 왕창 씁니다. 끝내 파산하고 본인도 죽고 맙니다. 알렉산드로스 임금도, 진시황도, 카이사르도 갔죠. 무모한 욕심 때문일까요?경제로 봐도 망하는 길인데(테오도르 몸젠 선생도 '잘 일구어진 땅은 영원하다' 하셨습니다) 왜 떨어먹는 장사를 하려는 권세가들이 있고, 옛날에는 임금들이 많았는지 듣고자 합니다.세상은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 '문명' 게임이 아닌데 착각하는 분들이 많이 나와서 하는 질문입니다.
저도 세계사, 전쟁사학계의 최고 권위자, 전문가이신 석학 임용한 박사, 석사의 "손자병법"을
가장 최고의 세계 전쟁사 책으로 추대할 정도로 완독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손자병법은 세계사에서 항상 1~3위권 안에 들 정도로 최고의 스테디 셀러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임금과 권세가들이 “확전(戰線 확대)”이나 “무리한 전쟁”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나라도 쇠퇴하고 본인도 파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런 선택을 반복했는지에는 여러 층위의 이유가 있습니다. 크게 정치적·심리적·경제적 요인을 나눠볼 수 있습니다.
확전을 택하는 권력자들, 그 무모한 욕망의 정체
손자병법에서 손무는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최선(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중국사의 모든 황제들은 이 손무의 명언을 실천한 적이 없습니다. 모두 전쟁을 통해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최선(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을 가장 현실적으로 잘 지켰던 나라는 바로 근대시대의 "대영제국(영국)"이었습니다. 대영제국의 영토들 중 50% 이상이 싸우지 않고 먹었던 영토였습니다. 영국이 먹었던 대부분의 땅은 무인도였거나 대부분은 비겁한 술수나 사기, 조약을 통해 먹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이 뉴질랜드 원주민들에게 사기를 쳐서 뉴질랜드 섬을 차지했던 "1840년 2월 6일의 와이탕이 조약"이 있습니다.)
또한, 독일의 석학 테오도르 몸젠이 말했듯 잘 일구어진 땅의 가치는 영원합니다. 이처럼 현명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 수많은 권력자들이 왜 모든 것을 걸고 파멸적인 전쟁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에도 깊은 성찰을 요합니다.
고대시대의 초패왕 항우, 수양제, 당태종, 당현종, 고선지 장군, 알렉산더 대왕, 진시황제, 카이사르, 발해의 무왕, 그리고 중세시대의 거란제국(요나라)의 야율 문수노, 고려시대의 척준경 장군, 근세시대의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 대항해시대의 뻬르디난드 마젤란, 근현대시대의 나폴레옹과 나치 독일의 히틀러, 일본 제국의 도조 히데키의 공통점들은 역사적인 위대한 영웅들이지만 결국 끝내는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같은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정복자 칭기스칸, 세계 역사상 최강국 대몽골제국의 후신인 티무르 제국의 대정복자 티무르, 나디르 샤, 에센 타이시, 몽골제국의 의붓자식인 오스만 투르크의 술레이만 대제, 흉노제국의 묵돌선우, 훈제국의 아틸라, 누르하치, 홍타이지, 건륭대제, 강희대제, 영락제, 한무제, 소련의 스탈린, 미국,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 같은 정복전쟁에 "성공"한 정복자들과는 대치됩니다.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전쟁게임, 전략게임인 "칭기스칸 시리즈"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4", "문명"이나 "삼국지"나 "임진록, 천년의 신화,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 게임 속 플레이어처럼 세계를 바라본 것은 아닐까 하는 지적은 매우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군사적 실력자들이 때론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확전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히 "무모한 야망"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복합적이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심리적, 정치적, 사회적 동기가 얽혀 있습니다.
고대, 중세의 황제들에게 전쟁은 부와 영토를 넘어 영원한 명예와 명성을 얻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습니다. 진시황제, 수양제, 당태종, 야율 문수노,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이 영광스럽게 찬양받기를 원했습니다. "영광에의 의지"는 경제적 손실이나 백성의 희생보다 우선하는 가치였습니다. 그들에게 전쟁은 제국의 자원을 소모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새기는 신성한 작업이었습니다. 이는 현대의 국가 지도자들이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입니다.
특히 당태종, 당현종, 고선지 장군, 발해의 무왕, 거란제국의 야율 문수노 같은 황제 장군들은 "세계사에 남는 정복자"가 되려는 강한 명예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손자병법의 실리적 전쟁관과 달리, 개인적 명예는 합리적 계산을 압도하곤 합니다.
"실패"한 정복자들 중에 대표적으로 진시황제, 나폴레옹, 일본제국의 카미카제 특공대와 군부의 사례를 들겠습니다.
상황: 춘추전국시대의 500년간의 대전쟁을 거쳐서 최종승리한 진나라는 춘추전국시대의 수많은 국가들을 멸망시키고 중국 최초의 통일 대제국을 건국.
확전 이유: 북쪽의 대제국 흉노제국과 중앙아시아 패권 전쟁하려고 계속 군사력 투입.
엄청난 군사력, 병참·인력 부담 → 백성 피폐, 대규모 군란 발발.
진시황제 사후, 불과 15년 만에 제국 쇠퇴.
영향: 제국의 도로망, 무역망, 정복전쟁, 외부 확장을 엄청나게 중시했지만 끝끝내 내부 통합과 제도 정비를 소홀히 하면 제국이 쇠락의 길로 달려감.
상황: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식민지로 삼을 정도로 유럽 대부분을 제패하고도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러시아, 영국 중 러시아와 맞짱을 뜨려고 했음.
러시아 제국과 전쟁해서 승리해서 유럽 제패를 완성하고자 하는 욕심.
몽골제국의 식민지로 240년간 전락했던 러시아였기에 "스키타이식 전술(초토화 작전)"에 강했기에
게다가 러시아의 혹한 겨울과 보급 문제로 나폴레옹은 병력 대부분 상실.
영향: 아무리 지력이 좋은 인물(나폴레옹)이라 한들, 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보급·지형·기후라는 현실조차도 무시하면 패한다.
ㄷ. 일본 제국의 태평양 전쟁 확전 (1941~45)
상황: 일본의 동남아시아 식민지화, 결국 미국과 전쟁.
“일본제국이야말로 동남아시아를 구원할 구원자”라는 거짓 이데올로기 명분(대동아경영권).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 기습 후 초기 승리와 카미카제 특공대가 미국을 압도함 → 곧 미국의 인구수, 경제력, 생산력에 밀려 패배.
미국은 풍요로운 경제력을 바탕으로 원자폭탄을 생산해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은 먼저 소련과 영국, 미국 연합군에 의해 패배했기에 일본 혼자서 중국, 소련, 미국을 상대로 싸워야 했고 끝내 항복.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끝남.
영향: 자원의 한계와 산업력 격차를 무시한 확전은 국가 존망을 건 도박이 됨.
✅ 이렇게 보면, 무리한 전선 확전은 대체로 단기적 명예·정치적 생존·자원 확보라는 “즉각적 동기” 때문에 선택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심의 떠남과 경제, 보급 현실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민심이 천심인 이유는 민심이 뒷받침 되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은 민심을 잘 달래서 일본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미국vs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국이 민심을 외면해서 결국 베트남에게 패배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2.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정치적 위기 탈출 전략
전쟁은 국내의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불만을 외부의 적에게 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강력한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백성들을 단결시킴으로써, 내부의 비판과 반대 세력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취약하거나, 경제 위기, 사회 갈등 등으로 민심이 흉흉할 때 권력자들이 흔히 선택하는 매혹적인 선택지입니다. 당장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전쟁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대표적 예가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새로 권력을 잡았거나, 내부 반대세력이 많을 때, 외부의 ‘공통의 적’을 만들어 결속을 꾀했습니다.
예: 근세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일본은 평시에는 군대·귀족·관료가 서로 견제하며 내부 불만이 쌓입니다. 내부 정적, 반란, 권위 흔들림에 대한 불안 때문에 밖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전쟁이 “도피”의 성격을 띨 때도 있습니다. 전쟁을 하면 “외부 위기”라는 명분 아래 권력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많은 영지들의 전쟁 군인들이 200년이 넘는 긴 전쟁기간 동안 오로지 전쟁으로만 직업을 하면서 살았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실업자가 될 위기에 쳐하자 군사 반란을 꾀했고 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정복과 동남아시아 식민지화라는 명분을 앞세워서 일본군이 동남아시아까지 전체 다 정복하면 자신들을 지지했던 수많은 영주, 군인들에게 동남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의 총독으로 임명해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동조한 수많은 영주와 군인들이 원정군에 참여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접해서 국가적 위기감을 느낀 태국의 아유타야 국왕마저 자신들이 전쟁 코끼리 군단들을 이끌고 조선을 돕겠다고 간절히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이는 조선의 식민지가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이거나 혹은 조선과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이 오랜 동맹국이어서가 아니라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원정군들이 조선을 정복하면 조선보다 군사력이 훨씬 약했던 동남아시아를 속전속결로 식민지로 삼을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고대, 중세, 근세의 제국들에게 팽창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국경을 맞댄 이민족이나 경쟁 세력은 언제든 자국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였습니다. 따라서 적이 더 강해지기 전에 먼저 공격하여 위협의 싹을 제거하고, 더 넓은 완충 지대를 확보하는 것이 곧 국가를 안정시키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공격적 현실주의" 관점은 끊임없는 영토 확장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안정을 위해 내일의 더 큰 전쟁을 부르는 "안보 딜레마"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고대시대의 "수나라"와 오늘날의 "러시아"입니다.
"수나라"의 경우는 북방 중앙아시아(몽골대초원)으로는 튀르크계의 대제국인 돌궐제국과 중앙아시아의 서쪽으로는 티베트계의 제국인 토욕혼(백란) 제국과 계속해서 전선을 넓히면서 전쟁을 하던 상황이었는데 하필 고구려가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에서 점점 영토적으로 팽창하면서 군사적 세력을 강화해갔기에 결국 수양제는 한반도, 만주, 시베리아에서 팽창하던 고구려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고 고구려 침략을 단행한 것입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세계 최강의 제국인 몽골제국이 동유럽~중부유럽까지도 정복하여 240년간 식민지배한 역사가 있었기에 240년 식민지 생활에서 해방된 후에는 시베리아까지 진출하여 동쪽(중앙아시아)에서 오는 군사적 외세의 침략과 정복을 차단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서쪽으로 근대시대 나폴레옹과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위협해왔습니다. 비록 몽골제국처럼 러시아를 정복해서 식민지 지배한 것과는 달리, 나폴레옹과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러시아의 극한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러시아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러시아 제국과 소련도 극심한 피해를 겪었고 이에 오늘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라는 완충국을 뒀습니다. 하지만 그 완충국인 우크라이나가 점점 반러진영에 가담하면서 완충국이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를 가장 위협할 비수가 되었고 이에 러시아가 먼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푸틴은 워낙 야심가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점점 점령해감에 따라서 폴란드까지도 드론 무기를 보내는 등으로 야심을 점점 강화해가고 있어서 국제적으로 엄청나게 큰일입니다.
연이은 승리는 권력자의 눈을 멀게 하고, 현실적인 판단 능력을 마비시킵니다. 자신만이 특별한 운명을 타고났으며,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주변의 충언은 들리지 않고, 자신의 결정을 신의 계시처럼 여기게 됩니다.
고대시대의 초패왕항우, 당태종, 당현종, 중세시대의 거란제국의 야율 문수노, 근세시대의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근현대시대 2차대전의 일본의 도조 히데키와 나치 독일의 히틀러 같은 군주들이 이러한 승자의 오만이 부른 파국적인 결과의 대표적인 세계사적 예들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침략전쟁의 경제적 타당성이나 현실적인 승리 가능성에 대한 냉철한 분석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몇 번 이기고 나면 자신이 “불패의 장군”이라 믿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패망 사례가 “연전연승 → 과신 → 무리한 원정 → 패망”의 패턴입니다.
권위주의자 개인의 야심뿐만 아니라,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보는 강력한 이익단체의 존재도 확전을 부추기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무기 생산을 담당하는 군수 산업, 전쟁을 통해 새로운 토지와 노예를 얻으려는 귀족 계층, 그리고 군대 내에서 승진과 명예를 추구하는 장군들이 그들입니다. 한번 시작된 전쟁은 이러한 이익 집단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멈추고 싶어도 쉽게 멈출 수 없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계속 굴러가게 됩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들이 고대 중국 수양제, 당현종, 일본 전국시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2차대전때의 일본과 나치 독일입니다.
고대·중세에는 농업 생산성이 제한적이어서 내부 축적보다 외부 침탈이 빠른 수익이었습니다. 전쟁이 단순히 낭비가 아니라 ‘수입원’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사에서 이 약탈 경제의 주인공들은 바로 북방 유목민족들이었습니다.
특히 흉노제국(몽골계,튀르크계,이란계)부터 시작해서 훈제국(흉노계), 돌궐제국(몽골계,튀르크계), 유연제국(몽골계), 거란제국(요나라), 서요제국(카라키타이 제국), 티무르 제국(몽골계), 여진제국(금나라), 후금과 대청제국(청나라), 준가르 제국, 오이라트 제국, 카자흐 칸국(몽골계), 우즈베크 칸국(몽골계), 무굴제국(몽골계,튀르크계) 같은 몽골계와 튀르크계 대제국들은 모두 약탈 경제로 세계사를 지배한 주인공들이었습니다.
대군단을 유지하면 평시에 비용만 듭니다. 그래서 “차라리 쓰자”는 발상이 나오곤 했습니다.
"잘 일구어진 땅은 영원하다" (테오도르 몸젠의 언어처럼) 하지만 그 땅을 가진 국가를 빼앗으면 즉각 세수와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 장기보다는 단기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 경제학적으로는 비효율이 많아 보이지만, 과거에는 토지·노동력(노예)·세금원이 곧 국력이라, 확전이 ‘투자’처럼 여겨졌습니다.
말씀하신 칭기스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삼국지 시리즈, 문명 시리즈, 천년의 신화, 임진록,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쟁게임들에서는 “확장 = 성장”이 공식처럼 작동합니다. 실제 세계 역사에서도 많은 통치자들이 그렇게 믿었습니다. 문제는 현실 세계에서는 병참·기술·기후·단결력(민심 통합, 총집결력) 통합 비용 같은 “보이지 않는 변수”들이 게임보다 훨씬 크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간과한 지도자들이 파멸을 맞이하여 실패한 정복자도 있었고, 성공한 정복자들이 존재하는 것이죠.
확전을 택하는 이유는 단순히 “무모한 야심”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필요, 개인의 명예욕, 구조적 압력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손자병법의 명언대로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자가 가장 현명하다”는 교훈이 반복해서 입증되어 왔습니다.
결론적으로, 세계사 속 군사적 권력자들이 선택한 파멸적인 확전은 단순한 탐욕이나 게임에 대한 착각을 넘어선 복합적인 동기들의 산물입니다. 영광에 대한 갈망, 정치적 생존 본능, 안보에 대한 강박, 승리에 대한 오만, 그리고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세력의 압력 등이 복잡하게 얽혀, 경제적 합리성을 뛰어넘는 거대한 힘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지도자의 비합리적인 신념과 심리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전쟁이 한번 시작되면 얼마나 통제하기 어려운 괴물로 변모하는지를 역사는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손무의 명언들 중 하나였던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가장 지혜롭다’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근대시대의 대영제국이 아닐까 싶습니다.